우리들의 겨울은 따뜻했다 ‘다시, 꿈꾸기 위하여’

1.

눈 이 유난히 많이 내린 겨울이었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묻혀버린 2009년의 시간 속엔 참 아픈 기억들이 많이 남겨져 있다. 영하(零下)의 대기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사람들의 말수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제 꿈을 드러내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가 많이 떠오르던 시간들이었다. 이 노장 감독은 불합리한 세계와 싸우는 일에 좀처럼 지칠 줄을 모른다. 영화는 빵을 얻기 위해 국경을 넘어 미국의 호화호텔에서 잡일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빵을 얻기 위해 하루 온종일 일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지긋지긋한가. 그래도 이 여성은 장미(아름답고 우아한 삶)에 대한 꿈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두 차례의 민주정부 10년. 그것을 되돌아볼 때마다 더없이 참담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이 시기가 바로 우리가 빵을 얻기 위해 서둘러 장미에 대한 꿈을 접어야 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10년이 지나자마자 우리들의 꿈은 종결되었다.

2.

그러나 꿈의 본질적인 속성은 역설에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판단이 멈춘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어떤 운동이다. 그것은 어둠을 만났을 때 더 빛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꿈은 현실을 토대로 생겨나지만, 생겨나는 순간부터 운동을 멈추는 법이 없어 전혀 비현실적인 무엇인가를 현실로 만들어버린다.


지 금 우리가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 중 상당수는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는 단지 꿈이었을 뿐이다. 달나라에 가는 우주선이 그러하고,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전화기도 그렇다. 물론 과학기술의 영역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조선에서 독립은 모든 이들의 꿈이었지만 그것이 조만간 현실로 도래할 것이라 확신한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러나 상당기간 불가능해보였던 그 꿈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1979 년 10월 27일 새벽, 누군가 깨워 일어났을 때 하숙집 주인은 방금 라디오에서 들었다며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소주를 꺼내와 따르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식탁에서 말없이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군사쿠데타로 시작하여 18년간 독재를 일삼은 대통령이 암살당했는데도, 드디어 민주주의가 시작된다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1980년 초입, ‘서울의 봄’이 왔을 때도 봄은 짧게 끝나고 다시 겨울이 닥치리라는 예감이 더 많았다. 광주가 유혈진압 당하자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은 겨울의 연속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노동일을 마치고 밤 12시가 지나서 인적이 드문 인천 송림동 좁은 골목길을 조심스레 누비며 전두환 군사독재 타도하자는 유인물을 집집마다 넣을 때에도 독재의 끝이 그리 빨리 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결국 그날은 왔다. 1987년 6월에.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 부르면 의혹의 눈초리로 다시 쳐다보고, 안기부는 물론 보안사까지 동원하여 노동조합을 사찰하고, 붙잡혀 가면 고문 때문에 24시간을 버티기가 힘들던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자주적으로 이를 운영하게 될 날은 내 평생 구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평생 암흑세계에서 노동운동을 하게 되리라는 예상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1987년 7월과 8월 두 달 동안 천5백 건이 넘는 파업이 발생하고, 1천여 개의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세계노동운동사상 유례없는 대폭발이 일어났을 때 나는 나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을 살아생전에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1992 년 감옥에서 나와 진보정당건설의 길로 나섰을 때, 나는 꿈에서 깨서 현실을 직시하라는 충고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정치를 하려면 될법한 정당에서 해야지 존립여부도 불확실한 당에서 무슨 전망이 있느냐는 걱정도 많이 들었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김대중 정부를 세우는 데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들어야 했다. 1987년과 1992년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진보정당운동이 다 닳은 촛불처럼 꺼져 갈 때 힘겹게 이 꿈의 대열을 지켜온 벗들도 하나 둘씩 미몽에서 현실로 돌아갔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노래가사는 나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는 것 같아 부를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인가 고난의 행군을 거쳐 2000년 1월 어렵사리 진보정당을 창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인생에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을 다해낸 것 같았다. 말로는 조만간 두 자리 수의 원내 의석을 확보하게 되리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내심 그 일은 우리 몫이 아니라 한참 나중에 후배들의 어깨에 놓여질 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꿈같은 일조차 창당 4년 만에 10석의 의석으로, 현실로 나타났다.

3.

나 는 다시 꿈을 꾼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 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지 않는 나라, 인터넷 접속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토머스 모어는 고작 하루 노동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여놓고 그 섬을 존재하지 않는 섬, 유토피아라 불렀지만 나는 그보다 더 거창한 꿈을 꾸지만 단지 꿈이라 여기지 않고 있다.


물론 아직 이 꿈은 꿈일 뿐이다. 암울한 현실이 깊어지면서, 꿈은 더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창당 4년만에 기적처럼 20%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불과 3년만인 지난 대선에서 3%로의 추락을 겪어야만 했다. 이 일이 불씨가 되어 당이 두 동강 나고, 두 당의 지지율을 합쳐도 2004년의 절반도 되지 않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진보가 ‘진부한’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고통받는 서민들은 아직 우리를 자신의 벗으로 인정하길 꺼려하고 있다.


진 보정치의 실현이 왜 이리 더디게 진척되느냐며 안타까워하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심지어는 진보정당이 출현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이 정도 성적표면 더 해볼 것도 없지 않겠냐는 얘기도 들린다. 진보정당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힘드니 계획을 바꿔 다른 배로 갈아타고 항해를 계속하자는 노선변경의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제까지 적지 않은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해서 모든 꿈이 현실로 될 것이라 말할 순 없다. 진보정당의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현실가능성이 크기 때문도 아니고, 그 꿈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도 아니다. 그 꿈 이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 국 사회의 정치현실은 아직도 척박하다. 한국 정치의 이념 지형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춰 한참 우경화되어 있다. 다른 나라에선 중도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보수정당이 개혁을 넘어서 진보를 자칭하고, 더 오른쪽에 있는 라이벌로부터 좌파로 매도되기도 한다. 정상적인 국가에선 극우로 불릴만한 세력들이 뉴라이트를 자처해도 통용된다. 스웨덴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내건 공약보다도 별로 나을 것 없는 정강정책을 가진 진보정당은 꼴통좌파로 비난 받기도 한다.

그 러나 진보가 별 것이던가? 구석기 시대에 돌을 깎고 갈아서 연장으로 쓰면 그것이 진보 아니었던가? 신분계급이 엄격했던 고려중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며 계급을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했던 만적의 꿈이 바로 진보 아니었나? 많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민주화시대의 한국 정치에서도 진보와 보수는 경제문제, 즉 먹고 살아가는 사회체제의 노선문제로 서로 나뉘어질 수밖에 없다.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우선시 하느냐, 다수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개선을 우선시 하느냐에 따라 일자리, 교육, 의료, 주거정책이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용산참사는 서울 경찰정장의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강경보수와 온건보수가 양당체제를 이루며 수십 년 대립하면서 주거정책이 그 둘의 중간 어디쯤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규직이 많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것도 노동시장정책이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나쁜 보수와 덜 나쁜 보수 사이에서 결정되어온 탓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경제를 바꾸는 것은 정치를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사회 양극화를 획기적으로 줄여내고 보편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한나라당 민주당 양당 중심체제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지 오래된 사실이다. 왜 진보정당인가? 왜 진보정당의 꿈은 실현되어야만 하는가? 그 답은 이미 많은 현실로 입증되었지 않은가.


4 .

그 렇다면 진보신당, 혹은 민주노동당이 정답인가? 이들이 대안인가? 이 둘을 합하면 대안이 될 수 있나? 오늘 진보정당들의 현 위치는 외부로부터 강제되었다기보다 우리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땅의 진보는 아직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잘못된 거울을 바꾸는 길밖에 없다고 믿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자신을 대변해주지 못하는 진보세력들을 두 눈 시퍼렇게 뜬 채 바라보고 있는 국민을 향해 국민이 깨어나야 진보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판 을 갈아야 한다. 강경 보수와 온건 보수가 한편으론 대립하며 다른 한편 의존하는 ‘적대적 의존관계’를 타파해야 한다. 희망이 멀고 절망이 가까운 현실의 암울한 상황 때문에 판을 갈기 위한 중장기적인 안목과 노력보다도 일회의 승부로 상황을 급변시키려는 투기적 발상, 어느 틈에 낡은 배를 새 배라고 우기는 포장술이 난무한다. 3김이 물러난 지가 언제인데 3김이 만든 정당들이 3김의 토대였던 지역패권을 기득권처럼 누리면서 정치를 독과점 하는 낡은 카르텔을 이제는 해체해야 한다. 이 낡은 카르텔을 묵인하고 그 속에서 승부를 보려는 것은 결과적으로 시대착오적인 낡은 정치지형을 온존시키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고, 우리의 꿈과 희망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 러나 판은 저절로 갈아지지 않는다. 누가 대신 갈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판을 가는 것은 진보가 스스로의 힘으로 커질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진보가 정당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 참을 수 없는 세상에 저항할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진보정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재구성해야 한다.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국민들에게 약속할 정강과 정책, 같은 목표 하에 모인 다양한 세력들이 공존할 수 있는 법칙을 다시 구성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낡은 잔재와 과감하게 결별하는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동시에 세력도 재구성해야 한다. 현존하는 정당세력만으로는 ‘운동권 동창회’를 탈피하기 어렵다. 대중정당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외연을 더 확장해야 하며, 시민사회와 전문가집단의 대대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약간의 기득권이라도 있다면 그것부터 버려야 한다.



진 보정당의 집권을 꿈꾸며 진보정치의 대장정에 나선지 20년이 되었다. 정당이라는 베이스 캠프를 마련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베이스 캠프를 떠나 현재의 위치로 오는 데 다시 10년이 걸렸다. 최종목표인 정상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다. 그러나 진보의 꿈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 함께 꿈을 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꿈은 현실이 된다.


5.

이 책은 한겨울에 진보의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진보를 고뇌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써내려간 우리들의 고백서이다.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직시하며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차마 자신에게 묻기도 두려운 질문을 자신과 똑같은 상대에게 물으며 꿈을 실현하는 길을 찾으려 몸부린친 흔적이기도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취조하듯 대화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만남이 있으므로, 우리들의 겨울은 더없이 따뜻했다.


대 담자의 한사람으로서, 어려운 시간을 내어 대담에 응해주신 홍세화, 진중권, 홍기빈, 김어준, 변영주, 김정진, 한윤형, 그리고 우정 어린 글을 써주신 우석훈, 이 여덟 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추운 겨울 만남의 자리에 찾아와 사진으로 대화를 보완해 준 이상엽 작가에게도 같은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나누고 싶다. 이뤄지기 힘든 이 대화가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애써 준 문부식 형과, 꾸리에북스 강경미 대표의 배려와 노고에도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은 여전히 아픈 가슴과 뜨거운 열정으로 꿈을 간직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진보의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꿈이 현실로 되길 바라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바친다. 그리고 감히 다짐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2010년 1월, 서울에서
노회찬